'김중배 선언'과 뉴스타파

1991년 9월 6일, 동아일보 4층 편집국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얼마 전 갑작스레 경질된 김중배 전 편집국장 환송회가 시작됐다. 김 전 국장은 “이 자리에 목욕재계를 하고 나왔다”며 퇴임사의 운을 뗐다.

1990년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권력보다는 더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도전의 세력에 맞서게 되었다는 게 신문기자 김중배의 진단입니다...

정치 권력만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권력은 자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 사태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언론에 대한 자본의 압력은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것입니다…

이 도전에 대한 언론의 응전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이것을, 저도 소주 좋아합니다만, 소주 한 잔 먹고 개탄하고 한풀이하고 분노를 토로하고 이런 것만으로 우리가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원천적인 도전입니다. 이것을 즉흥적인 순발적인 그런 감상, 격정만으로 우리가 극복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여러분의 숙제이면서 동시에 제 숙제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우리 선후배, 동료 여러분들의 숙제입니다...

이것은 개인으로서 대응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마는 정말로 고민하고 그리고 연대하고 허물어서 극복 가능한 이런 우리의 숙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저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습니다.


▲ 1990년 7월 동아일보 편집국장 취임식. 김중배 전 국장은 1년 뒤인 1991년 9월 6일 ‘김중배 선언’을 남기고 동아일보를 떠났다. 출처 : <대기자 김중배>

김중배 전 편집국장은 거대한 자본 권력에 대응하는 것은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언론인 스스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 시범의 하나로 작은 초석을 하나 놓겠다고 선언했다.

제가 어떤 결단을 함으로써 그것이 풀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그런 환상주의자는 아니올시다. 누군가 돌맹이 하나를 던져야 파문이 일어날 것이 아닌가, 그런 충정으로 저는 감히 오늘 이 환송회의 자리가 김중배가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를 물러서는 자리가 아니라, 김중배가 동아일보를 물러서는 자리의 환송회로 인식하고 저는 물러가고자 합니다.

1963년부터 28년 동안 몸담았던 동아일보에서 이렇게 그는 떠났다. 일찌감치 자본의 언론지배를 통렬히 경고한 그의 퇴임사는 지금까지 언론계와 학계에서 ‘김중배 선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해마다 ‘한국언론사(言論史)’ 과목 기말고사에 거의 빠트리지 않고 “‘김중배 선언’이란 무엇인가요”라는 문제를 출제한다고 했다. ‘김중배 선언’은 자본 권력이 언론통제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는 상황을 경고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한국 언론사의 한 패러다임전환 장면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공 시절 정치 권력의 간섭이 여전한 상황에서, 그래서 마치 연탄가스처럼 뉴스룸에 스며드는 자본 권력의 통제 방식을 미처 또렷이 탐지하기 어려웠을 때 대기자(大記者) 김중배는 이미 그 독가스의 정체와 파괴적 해악을 간파한 선지자였다.

‘김중배 선언’을 통해 자본 권력의 도전에 대한 언론의 응전을 촉구하며 하나의 초석을 던진 김중배 대기자는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13년 3월 27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사무실 개소식에 나타났다. 그는 축사를 통해 "오늘은 우리 언론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오늘 쏟아진 축하와 축사를 뉴스타파는 언제나 명심하며 끝까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뉴스타파를 후원하는 3만 명의 사람들은 진실의 수호자"라며 "뉴스타파는 후원회원들의 머슴이고 종이다. 이분들의 성원을 잊지 말고 탐사저널리즘 본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 2013년 3월, 뉴스타파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김중배 99%위원회 위원장

대기자 김중배는 이날 그가 20여 년 전 깔아놓은 응전의 초석에 작은 기둥 하나가 세워지는 것을 목격했다. 뉴스타파 후원회원에게 ‘진실의 수호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그다.

김중배 대기자는 그 이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의 이사회 격인 99%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유일의 비영리 독립 탐사매체를 지키고, 동시에 후원회원과 제작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1957년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그는 올해로 62년째 언론계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3.1 혁명 100년, 민국 100년을 맞는 2019년에 대한민국 탐사보도의 허브 역할을 감당하고, 독립언론들이 서로 연대·협업할 수 있는 언론 독립 공간을 확보해 어떠한 권력의 도전에도 응전할 수 있는 저널리즘 진지와 시민 네트워킹 거점을 구축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재벌언론, 족벌언론, 관제언론이 지배해 온 한국 저널리즘 지형을 바꿔나갈 계획이다. 정파성, 상업성에 매몰된 기성 주류매체들에게만 ‘언론’이라는 중요한 사회 제도를 맡기기에는 한국 언론 생태계가 너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독립언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해온 김중배 뉴스타파 99%위원회 위원장을 모시고 91년 ‘김중배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 그리고 자본 권력의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언론지배에 응전하기 위한 독립언론의 물적 토대로서 연대와 협업 공간의 필요성과 활용 방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인터뷰 요지.



김용진(뉴스타파 대표) : 선배님은 올해 언론계 생활이 62년째이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겨레와 MBC 사장까지 역임하셨는데 4년 전부터는 뉴스타파 99%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십니다. 저희 같은 독립언론을 지켜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중배(뉴스타파 99%위원장) : 무슨 왕성하다는 표현에 대해선 약간 정정을 해야 될 거 같아요. 나이가 몇 살인데 왕성할 수 있겠습니까. 과분한 말씀이고, 독립언론과 함께 하는 걸 구태여 말씀드린다면 제가 지난 62년을 회고컨대 부끄러운 세월이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론은 언론다운 자기의 자주성, 독립된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언론 행위를 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언론인의 꿈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언론에 입문할 때는 자유당 이승만 정권 시절이었죠. 그때는 정치 권력의 폭압이 노골적이었고, 훗날 저는 그렇게 표현합니다만 그때는 어떻게 보면 로맨틱했다, 왜냐하면 너무 직접적으로 아무 기교도 없이 폭압이 자행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내가 주목한 것은 우리 경제 자본이 성장하면서 이제 정치 권력의 억압과 개입, 영향 이외에 자본의 막강함, 그리고 노골적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연탄가스처럼 사람을 마비시키는 이런 자본의 권력이 우리 언론을 병들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정치 권력에서 자유 독립을 쟁취하는 계기, 독립 자체가 경위도 그렇고 말할 나위가 없겠죠. 뉴스타파는 정말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런 권력으로부터 뿐만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그런 기반에서 출발했다는 것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많은 나이에도 참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1987년 전두환 정권 말기에 기자가 됐는데 그때도 정권의 폭압은 굉장히 심했는데 별로 로맨틱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로맨틱하다고 본 것은 이승만 정권 당시의 폭압은 깡패를 동원해 기자들을 폭행한다거나, 신문에 오식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는 한자를 쓸 때니까 동아일보가 대통령을 한자로 인쇄를 했는데 대통령 대 자에 점이 하나 들어갔어요.

개 견 자가 돼 버렸군요.

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이 동아일보를 정간시키고 이제 그런 류의 폭압을 했죠.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 표현을 빌자면 단수가 낮았던 거죠. 그런데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은 아시다시피 그 채찍과 당근, 양면 작전을 쓰기 시작했잖습니까? 언론을 폭압하면서 한쪽으로는 언론사에 여러 가지 특혜를 주고. 그래서 당시가 산업화 시대였는데 신문이 경영의 측면에서는 일대 도약을 하는 그런 시대였죠.

저 같은 사람이 이런 말 하면 꼰대란 소리 들을 수 있겠지만 언론사 경영의 비약적인 도약, 성장 이것이 언론의 질적 상승에 기여했는가? 저는 오히려 어쩌면 정반대의, 반비례의 현상을 초래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것을 통렬히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언론사 경영 기술의 발전이나 규모의 확대가 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담보해주지는 않았단 말씀이죠?

오히려 역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현장의 언론인들에게 존경하는, 본받을만한 언론인이 누구냐 이렇게 물으면 리영희, 송건호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늘 빠지지 않는 이름이 김중배라는 이름입니다. 많은 언론계 후배들이 김중배를 우리가 본받아야 언론의 사표로 여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전 그래요, 우리 후배들이 조금 저를 깊이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어떤 그런 경지의 사람으로 내세우면 우리 한국언론의 자화상이 너무 처참하지 않습니까. 초라하고, 남루하고, 그래서 정말 저는 싫고.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내가 어디서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제 진심을 말하면 저 사람은 상당히 겸손하고, 미덕이 있다고 또 다른 해석을 하시니 우리가 참 소통이 잘 안 돼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제가 동아일보에서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칼럼을 썼는데 저는 한 마디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신문 문장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폭압을 피하기 위한 어떤 비겁하고 교활한, 그러니까 그것은 절대로 텍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간추려 말씀드려서 저 같은 언론인이 살았던 언론인의 삶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한때는 목숨을 걸어야 바른말을 할 수 있었잖습니까? 저는 그런 시대는 매우 불행하다, 병든 시대다, 병든 사회고. 그러니까 목숨을 걸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꿈이었고 그것이 꿈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점점 현실로 우리가 가꿔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무던히나. 그래도 조금씩은 그 길을 향해서 오고 있다고 전 생각을 합니다.

제가 예전에 기자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때 선생님이 쓰신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칼럼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끼리 말하는 것을 언론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때 당시 제 심정으로는 사람들에게 말해서 이것이 될 것인가 하는 절망감, 장벽 그런 느낌, 그래서 하늘이여 땅이여를 불렀습니다. 그런 언론이 어디 되겠습니까? 그런 언론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그 가운데서 우리 문제를 풀어나가고 이렇게 길을 열어나가고 해야 되는 것인데 하늘과 땅을 부르고 있는데 그게 언론인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에 통탄하고 그때도 솔직히 말씀드려서 사람들한테 말해서 소용이 없는 거 같다, 그래서 나온 게 하늘이여 땅이여를 부른 겁니다.

박종철 사건만 가지고 말씀드리면 제가 그렇게 썼어요. 박종철 죽여놓고 또 죽이려고 했잖아요. 불태워서 없애버리려고, 죽음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저는 처음에 호소했던 게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를 바란다고 썼죠 그때. 그런데 지금도 그런 게 진행되고 있잖아요. 죽음을 또 죽이는, 그래서 그 죽음이 없었던 것처럼, 그 죽음이 아무 의미가 없던 것처럼. 그 죽음의 의미를 죽여버리려고 하는 그런 시도는 계속되고 있잖습니까. 그런 것을 통탄할 따름입니다.



1991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에 지금도 많은 언론인 사이에 회자가 되고 있지만 ‘김중배 선언’이라고 있었습니다. 김중배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언론을 지배하는 외부적 영향이 정치 권력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으나, 김중배 선언 때 명확히 의미가 표출되는데 자본 권력의 언론에 대한 침해가 훨씬 더 영구적이고 패악이 클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렇죠. 그런 상황은 제가 그런 말씀(김중배 선언)을 드리기 이전부터 진행, 축적돼 왔었고. 그러다 보니까 그 권력의 폭압은 강압으로 뭘 어떻게 하라, 또 우리 후배가 취재한 진실을 정권이 어느 이상 내면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가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이 자본의 이런 상투적인 외압은 잘 보이지 않고 찾기가 어렵죠 사실은. 그러면서도 치명적 영향을 줍니다.

제가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할 때 터진 사건이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입니다. 페놀이라는 독성 물질이 낙동강을 오염시킨 대단히 중대한 사태였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당시 우리 기자로 구성한 특별취재반뿐만 아니라 환경운동 하시는 분들, 또는 전문학자와 교수들과 함께 특별취재반을 만들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줄기차게 취재를 전개했었는데 이게 광고주와의 문제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압력이 들어오는 것을 이렇게 보면서.

우리 김 대표도 이제 거대 방송사에 계셔봤으니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그런 외부 압력은 견딜 만 해요. 정치 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저는 무신경해서 그런지 뭐 견디면 견디는 거지 그런 생각으로 살았는데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생활을 하는 회사 내의 상황, 압력이라는 게 견디기 힘들잖아요 그게.

경영진으로부터 압력이었나요?

경영진도 그렇고 뭐 여러 가지가 그 힘들었죠, 날마다. 그 아침부터 얼굴 맞대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사실 저는 외부 압력은 괴롭지 않았어요. 그게 저기 저 남산 같은 데, 그때 중앙정보부, 안기부 이렇게 가서 두들겨 맞고 와버리면 그만인데 차라리, 그런데 이게 마주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는 사람들끼리 이래 가지고 정말 괴로운, 그래서 이제 단지 뭐 페놀 사건만 아니라 그 추이를 보면서 아 이것이 정말 그렇지 않아도 병든 우리 언론을 더 병들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죠.

광고나 협찬을 하는 그런 자본으로부터의 어떤 영향이 경영진을 통해서 편집국 내부에 독가스처럼 스며들 때?

스며들었다, 난 생각합니다.

김중배 선언이 나오고 20여 년 뒤에 외부 영향, 특히 자본 권력에서 독립해야 언론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그런 어떤 사회적 요구 이런 것들이 있었고, 그래서 2012년에 뉴스타파가 태어나게 됐습니다. 뉴스타파 같은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매체가 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저는 이런 독립언론을 지향하는 그런 미디어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길을 가든 이런 미디어의 생명이 어떤 요인들에 무너져버린다면 독립언론 그 자체의 영위가 단절되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이 시대에 같이 숨을 나눠 쉬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제가 지난 연말에 우리 뉴스타파 회원님들 모시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독립을 위해서 혼자 독립할 수 없는 독립, 바로 독립의 아이러니잖아요. 독립이라는 게 홀로 서라는 건데 그러나 정말 독립을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독립이라는 것을 우리가 서로 잘 인식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우리 인간이라는 게 여러 가지 특징이 뭐 인간만이 도구를 쓴다, 언어를 쓴다 등이 있었지만 그게 다른 동물들도 쓰는 것으로 자꾸 확인됐죠.

그런데 언젠가 이 신화도 무너질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아이를 출산할 때 아이를 낳을 때 혼자 낳지 않잖아요. 누군가 도와줘야 낳아요. 그것을 어떤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출산을 한다, 인간은 탄생부터 사회적 출산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뉴스타파를 어린 애로 비교하면 실례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우리가 뉴스타파를 일종의 사회적 출산을 통해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기르고 이것을 지속 가능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올해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100년이 되는데 우리가 독립운동도 열심히 힘을 모아서 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이 된 게 아닙니까? 혼자씩 뿔뿔이 해서는 독립운동이 안 되듯이 그래서 뉴스타파와 독립운동이 큰 둘레에서는 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우리 뉴스타파는 대개 지향하는 바가 있죠. 그런 일반적인 가치, 보편적 가치, 그런 것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더 정밀하게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 이런 것도 사실은 우리 이 독립언론과 함께 하는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같이 탐색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가 이제 곧 출범 7년이 되는데 사실 독립언론을 표방했지만, 우리 혼자 선 적은 없었죠. 시민들의 도움이 있었고 성원이 있었고 또 다른 저희들하고 비슷한 그런 취지를 가진 1인 미디어든 뭐 독립매체들하고 또 협업하면서 많은 성과를 냈는데 올해는 본격적으로 저희가 그런 연대와 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그런 공간을 확보하고 독립탐사언론의 진지이자 거점을 구축해서 저널리즘 지형을 바꿔나가는 전환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거점이 있어야 되겠죠. 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우선 중심이 되고 그동안 회원들의 참여 속에서 이것을 지속하면서 정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비축해왔던 그 기염을 토대로 또 확산을 하신다고 하는데 저는 아까 말씀드린 동시대인들의 참여, 그러니까 여러 독립 미디어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앞으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디어 조직과의 협업뿐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지적자원이 그런 결사체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 시대의 지적 자원은 여러 군데에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도 있고, 그러니 우리가 다 같이 어떻게 연결시켜서 네트워킹해서 이것을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가 그런 고민을 해야 될 거 같다고 생각하고요. 또한 이 독립언론의 시도라는 게 거점을 만들어 놓고 확산을 지속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명맥이 끊길 수도 있는 그런 위험이 항상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우선돼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전문직업인이라는 장점이 있죠. 그런데 새로운 발상을 하려면 저쪽 생각과 이쪽 생각 같은 것들이 연결되면 될수록 오히려 창의적인 생산이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가 한 발자국씩이라도 나아가는 새로운 지평의 프로그램을 날마다 시시각각 개발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나는 생명이고, 그리고 미디어도 같은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요즘은 뒤집어서 메시지가 미디어라는 거 아닙니까. 좋은 메시지가 있으면 그 자체가 미디어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 현실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을 우리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사실 저희가 지난 7년간 3군데 공간을 옮겨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여기 광화문 성공회빌딩에 딸린 사무실로 옮겨올 때는 그 전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새 일할 공간을 알아보는데 건물주들이 저희를 여러 차례 배척하고, 그래서 정말 갈 데가 없다는 절박함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시민과 함께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면 뉴스타파만의 공간이 아니고 세상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고, 우리 후세를 위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독립탐사언론의 협업공간,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거점을 우리가 만든다는 거 자체가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거기서 저는 조금 전에 좀 뜬금없이 말씀드렸는데 그 미디어가 메시지인 시대를 지나서 그것이 전복되어서 메시지가 바로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 독립언론의 길이 다양하게 열릴 수 있는 그런 여건이 기술적으로는 마련이 돼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를 산다는 게 김 대표가 말씀하신 것처럼 이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만 잘사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식들하고 우리 손자들이 대를 이어갈수록 더욱 삶의 질이 충족스러워지는, 풍요로운 거보다는 삶의 질이 더 의미 있어지는 그런 시대를 열어가는 길을 가꿔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정치 권력, 또 자본 권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그 독소적 바이러스를 최대한 우리가 상대해나가면서 독립언론의 길을 열어가야 할 텐데, 새롭게 만드는 그런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독립 미디어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이런 독립언론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민, 이용자 등과 다양하게 접촉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그런 공간적 배치, 설계 이런 것이 저는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뉴스타파가 하나의 공간적 확장을 넘어 이 시대에 맞는 것은 그런 공간들을 도처에 세포분열처럼, 좀 상스러운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도처에 새끼를 치는 그런 쪽으로 확장하는 것이 어떤가, 그런 점에서 뉴스타파가 구상하고 있는 안이 매우 야심적이어서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성 주류매체에만 우리 사회에 정말 중요한 이 언론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맡겨놓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절박한 것 같습니다.

독립 탐사언론은 문법이, 그러니까 콘텐츠는 물론이고 경영이나 테크놀로지나 접근의 방식이나 이런 것이 새로운 문법을 우리가 새롭게 마련하고자 하는 거점을 토대로 양성해가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저 같은 사람도 속죄가 많이 될 거 아닙니까.